지난 편에서는 바디 필러가 얼굴 필러와 왜 다른 규칙을 쓰는지, 제품과 마취와 도구가 용량을 따라 어떻게 바뀌는지를 말씀드렸습니다. 그건 이 시술의 바닥에 깔아 두어야 하는 조건이었고요.

조건이 갖춰졌다면 그다음 질문이 남습니다. 그래서 무엇을 만들 것인가. 상담에서 이 질문이 "몇 cc 넣을까요"로 먼저 나오는 순간, 그날의 대화는 형태가 아니라 숫자를 중심으로 흘러가 버립니다.

용량은 목표가 아니라 결과입니다. 만들 형태가 정해지면 필요한 양은 뒤따라 나옵니다.

"여기 조금, 저기 조금"이 통하지 않는 부위

얼굴 필러는 대체로 미세한 분배의 작업입니다. 이 자리에 0.3cc, 저 자리에 0.5cc 하는 식으로 나누어 넣으면서 전체를 부드럽게 이어 붙이죠. 얼굴은 면적이 좁고 굴곡이 촘촘해서 그렇게 다뤄야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몸은 사정이 다릅니다. 어깨 한쪽이 15~20cc를 이야기하는 자리인데, 그 양을 얼굴처럼 잘게 나눠 여러 곳에 흩뿌리면 어떻게 될까요. 부피는 분명 늘어나는데 정작 각은 생기지 않습니다. 전체적으로 조금씩 두툼해질 뿐, 어깨 끝이 곧게 떨어지는 그 선은 나오지 않아요.

진료실에서 "필러를 꽤 넣었는데 라인이 안 산다"는 말씀을 들으면, 저는 양보다 먼저 어디에 무엇을 만들려고 했는지를 여쭤봅니다. 답이 뚜렷하지 않은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목표가 흐릿한 상태로 양만 늘리면, 결과는 각이 아니라 둔함 쪽으로 갑니다.

목표 실루엣을 먼저 그립니다

그래서 저는 바디 상담을 형태에서 시작합니다. 어깨 끝이 어디쯤에서 떨어졌으면 하는지, 쇄골 라인이 어느 정도로 드러나면 좋겠는지, 팔은 어디까지 곧게 이어지면 만족스러울지를 먼저 이야기합니다. 그림이 정해지고 나서야 그 그림을 채우는 데 얼마가 필요한지 계산이 시작돼요.

같은 재료를 두 가지 방식으로 쓸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구분얼굴식 접근바디식 접근
시작하는 질문어디에 얼마를 나눠 넣을까어떤 형태를 만들까
다루는 단위0.3~0.5cc씩 미세 분배목표 형태를 채우는 덩어리
기준점꺼진 곳을 메운다가장 바깥 지점을 정한다
확인하는 자세누운 상태에서 좌우 대칭앉거나 선 상태의 전체 실루엣
용량이 정해지는 시점시작할 때형태를 정한 뒤

표의 마지막 줄이 이 편에서 가장 말씀드리고 싶은 부분입니다. 용량을 먼저 정하면 그 양을 어떻게든 쓰는 시술이 되고, 형태를 먼저 정하면 그 형태에 필요한 만큼만 쓰는 시술이 됩니다. 순서 하나가 시술의 성격을 바꿔 놓아요.

어디에 얼마를 넣을지보다, 무엇을 만들지를 먼저 정합니다. 그림이 있어야 양을 계산할 수 있으니까요.
어디에 얼마를 넣을지보다, 무엇을 만들지를 먼저 정합니다. 그림이 있어야 양을 계산할 수 있으니까요.

가장 바깥 지점을 밀어내는 원리 — 어깨의 직각

어깨를 예로 들면 이해가 빠릅니다. 흔히 말하는 직각 어깨는 어깨 전체가 두꺼워져서 생기는 모양이 아닙니다. 가장 바깥 지점 하나가 뚜렷하게 정해질 때 그 점에서 팔로 떨어지는 선이 곧아 보이는 것이죠.

그래서 어깨 필러는 넓게 펴 바르는 작업이 아니라 그 바깥 지점을 어디에 둘지 정하고 그 자리를 세우는 작업에 가깝습니다. 보형물을 넣어 형태를 만드는 수술에서 쓰는 사고방식과 비슷한 면이 있어요. 어디까지 밀어낼 것인지 목표점을 먼저 찍고, 그 점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만큼을 채웁니다.

지점이 정해지지 않은 채로 양만 들어가면 결과는 대개 두 갈래입니다. 각이 안 생기거나, 엉뚱한 자리가 볼록해져서 오히려 어깨가 솟아 보이거나요. 어느 쪽이든 더 넣는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물론 어깨뼈의 위치나 근육이 붙은 모양은 사람마다 달라서, 그 지점이 어디가 될지는 진찰에서 직접 보고 정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누워서 잡아 둔 라인이 서면 달라지는 이유

여기까지 정했어도 한 가지가 남습니다. 어떤 자세에서 만들 것인가입니다. 사소해 보이는 문제 같지만 결과를 꽤 크게 가릅니다.

누우면 몸의 연부 조직은 중력을 따라 옆으로 퍼집니다. 어깨도, 팔도, 쇄골 주변도 마찬가지예요. 그 상태에서 좌우 대칭까지 맞춰 잘 잡았다고 생각해도, 일어서는 순간 퍼져 있던 조직이 제자리로 돌아오면서 형태가 달라집니다. 누워서 본 그 모양은 일상에서 아무도 보지 않는 모양이기도 하고요.

우리가 실제로 몸을 확인하는 자세는 앉거나 서 있을 때입니다. 거울 앞에서, 옷을 입고, 중력이 걸린 상태에서요. 그래서 바디 필러는 앉은 자세로 진행합니다. 만드는 동안 계속 그 각도에서 확인할 수 있어야 하니까요.

누워서 만든 라인은 누워 있을 때 가장 예쁩니다. 문제는 우리가 누워서 거울을 보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거울을 함께 보는 시간이 곧 시술입니다

그래서 시술 중에 거울을 함께 봅니다. 제가 만든 형태가 잘 나왔는지를 저 혼자 판단하지 않고, 실제로 그 몸을 매일 보실 분과 같은 화면을 보면서 맞춰 나가는 겁니다. 여기서 조금 더 세웠으면 좋겠다거나,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이야기가 그 자리에서 오갑니다.

진료실에서 자주 마주하는 어긋남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흔한 판단실제
cc가 많을수록 라인이 잘 산다목표 지점이 없으면 양이 늘수록 둔해진다
얼굴처럼 여러 곳에 나눠 넣으면 자연스럽다몸에서는 형태가 흐려지고 각이 사라진다
누워서 해야 정밀하게 된다실제로 보이는 자세에서 만들어야 맞는다
디자인은 시술 전에 잠깐 정하는 것거울을 보며 맞춰 가는 과정 자체가 시술이다

마지막 줄이 제가 이 편에서 드리고 싶은 말입니다. 설계는 시술 앞에 붙는 짧은 절차가 아니라 시술과 같은 길이로 이어지는 일이에요. 상담에서 형태 이야기가 충분히 오갔는지, 시술 중에 확인할 수 있는지 — 이건 물어보면 바로 알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시술 중에 함께 거울을 봅니다. 매일 그 라인을 보실 분의 눈으로 확인해야 맞으니까요.
시술 중에 함께 거울을 봅니다. 매일 그 라인을 보실 분의 눈으로 확인해야 맞으니까요.

바디 필러를 알아보고 계신다면, "몇 cc가 필요할까요" 대신 "어떤 형태를 만들 수 있을까요"로 첫 질문을 바꿔 보시길 권합니다. 돌아오는 답의 구체성이 그 상담의 성격을 거의 그대로 보여 줍니다.

다만 형태를 그리기 전에 치워야 할 것이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무리 정확한 자리에 만들어도 그 위를 두꺼운 지방이 덮고 있으면 라인이 드러나지 않거든요. 다음 편에서는 왜 필러부터 권하지 않는지, 부위별로 무엇을 먼저 정리해야 하는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